2023.12.22
아라뱃길 매화동산 (김경은, 유현옥)
2023. 서구학 에세이
아라뱃길 매화동산
(김경은, 유현옥)
친구들과의 모임 장소를 고민하다가 모두가 쉽게 찾을 수 있는 검암역으로 정했다. 가까운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고 동쪽으로 이동했다. 아직 해는 따갑지만,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이 여름의 끝자락을 알리는 듯하다.
천천히 걷다가 처음 만난 곳은 ‘시천나루선착장’이다. 무더운 날씨에도 사람들은 산책을 하거나, 타고 가던 자전거에서 내려 뱃길을 바라보다. 우리도 흔들의자에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보며 추억을 사진과 눈에 담는다.
선착장을 지나 다다른 곳은 ‘시천가람터’다. 서구는 지난 1월 시천가람터 수변문화 공간에 대한 운영, 관리 사무를 인수하고 올해 처음 물놀이장을 개장했다. 첨벙첨벙 뛰노는 아이들은 우리를 추억에 머물게 한다. 물놀이장은 실외수영장, 조합놀이대, 쉼터 등을 갖추고 있다. 운영기간은 7월 20일부터 8월 20일까지라 하니 올해 이용을 못했다면 내년을 기약해야겠다.
그렇게 10여분을 더 걸으니, 원래 목적지인 ‘매화동산’이 나온다. 이 곳은 매화를 주제로 아라뱃길에 조성한 공원으로 전정, 주정, 후정으로 나뉘어 있다. 매화동산 입구와 진입 공간인 전정을 지나, 매원, 시비, 정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주정으로 들어선다.
주정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돌에 새겨진 안민영의 ‘매화사’라는 시 전문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읽어보니, ‘추위(시련)를 이겨내고 꽃을 피워 봄을 알리는 매화를 예찬한 시로서 매화를 의인화하여 그 아름다운 자태를 노래한 시’라고 적혀 있다. 문득 저자와 시가 궁금해져 검색해 보니, 안민영은 1816년에 태어난 조선시대 서얼 출신의 가객이고, 매화사는 조선 고종 때 지은 시조라고 한다.
매화사를 뒤고 하고 고개를 돌리니, 신라 하대 문인인 최광유가 쓴 ‘뜰매화’의 시비가 보인다. 고향에 있는 매화 몇 그루가 서쪽길 떠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의 시조이다.
▲ 매화사, 안민영 ▲ 뜰매화, 최광유
시의 여운을 뒤로하고 조금 더 들어가니, ‘검여 유희강선생 생가마을’이라는 매화동산 조성에 대한 유래가 적혀 있다. 매화동산은 검여 선생의 생가가 있던 마을로, 2011년 경인아라뱃길이 만들어지면서 그 역사적 흔적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인천시립박물관장, 인천시립도서관장 등을 역임한 검여 선생은 인천 시천동 출신으로 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 명필가로 손꼽힌다고 한다. 1968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오른쪽 반신마비가 왔으나, 필사적인 노력 끝에 왼손으로 글씨를 쓰고 1971년에 개인전까지 열었다고 하니, 그 노력에 무한한 찬사를 보낸다.
잠시 서서 검여 선생의 글을 읽어본다.
‘적서승금: 책을 쌓아 두는 것이 금을 쌓아둠보다 낫다.(1963)‘
’유지자사경성: 뜻을 가진 사람으면 마침내 일이 성사된다.(1961년경)‘
’탐매도: 계축(1973)년 동절에 검여가 왼손으로 쓴 글씨‘
▲ 매화동산은 검여 유희강 선생의 생가가 있던 마을로, 2011년 경인아라뱃길이 만들어지면서 그 역사적 흔적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글을 읽으려 걷던 우리는 ’꽃마루’라 쓰인 정자에서 잠시 쉬고, 이황의 ‘도산월야명매’가 쓰여 있는 시비 앞에 멈추어 시를 읽는다.
‘홀로 창가에 기대서니 산속바람 차가운데
매화나무 가지 끝에 떠오르는 둥근 달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이니
맑은 향기 저절로 뜨락에 가득 차네’
이황의 ‘도산월야명매’는 읽는 이의 오감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글에 취해 잠시 눈을 감고 있자니,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온다. 푸르른 이 여름에 매화꽃이 어디 피어 있으련마는 바람에 실려 온 매화향이 코끝을 간지럽히는 듯하다. 나만의 시간은 어느덧 둥근 달이 떠오른 밤으로 향하고 눈 속에서 홀로 피어난 매화꽃을 상상한다.
다시 눈을 뜨고 불로문을 지나, 옹기원이 있는 후정까지 왔다. 옹기원은 원래는 매화나무 열매인 매실을 저장하고 관리하던 곳이라 하나 지금은 관상용으로만 남아 있다.
▲ 매화동산의 후원으로 조성된 ‘옹기원’
녹음이 물든 여름 이곳도 푸르름이 가득하다. 매화는 2~3월에 개화하고 매실은 6~7월에 수확한다. 지금은 개화시기도 수확시기도 지났으나, 서서히 산책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 사진출처 : 직접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