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라진 ‘서구 랑랑축제’, 우리 가좌동 길거리 위의 추억 (김경은, YAMADA TAKAKO)
  • 관리자
  • 2023-12-22
  • 422

2023. 서구학 에세이

사라진 ‘서구 랑랑축제’, 우리 가좌동 길거리 위의 추억

(김경은, YAMADA TAKAKO)

 ”당시는 다문화라든가 관련한 축제라서 예산이 좀 잘 나왔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라며, 근처에 사는 일본 출신의 선배 어머니는 말했다. 얼굴에 당시를 그리워하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인천시 서구가 2003년부터 6년 동안 전국 축제로 키워온 ‘랑랑 축제’가 2009년에 폐지되던 당시에도 찬반 의견이 엇갈리고 있었단다.

 ‘아리랑 아리랑 춤을 추자’는 뜻을 담은 랑랑 축제는 전국 각 지역에서 모여든 시민들을 하나로 묶는 축제로 구상됐다. 누구나 친근함을 느낄 수 있는 ‘춤’을 매개로 기획했으며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춤 경연대회로 구가 지난 2003년 개최한 뒤 2008년까지 6회째 이어져 왔다.

 
▲ 주민이 함께하는 길거리 종합예술 축제인 제 3회 랑랑축제(RangRang Festival)에 춤을 사랑하고 아끼는 전국 아마추어 동아리 및 국내외 단체팀 들의 적극적인 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출처 : 인천뉴스)
 

 당초 구비 5천만 원으로 시작한 이 축제는 지난 2006년부터 시비 5천만 원을 지원받으면서 전국은 물론 러시아, 필리핀, 일본 등 외국인 10여 팀이 참가하고 춤 동아리들과 외국인 근로자 모임, 일반 참가자, 거리 퍼포머(performer, 연기자 혹은 연주자) 등 다양한 참여로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구의회가 예산을 심의하면서 관련 예산인 구비 5천만 원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에 폐지할 수밖에 없었던 듯했다.

 그렇게 아쉽게 막을 내린 ‘랑랑 축제’에서 특별히 기억 나는 사람이 있었다. 이 축제의 기획자 중 한 사람이며, 일본 출신 선배인 호서대학교 문화영상학부의 가나이(金井) 교수다. 그는 아마 일본 길거리축제인 '요사코이 축제'를 본 따서 이 축제를 기안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가좌동의 한일가정을 중심으로 한 '요사코이 코리아'를 축제에 출연시켰다. 이 그룹의 리더는 일본 '요사코이 축제' 발원지인 고치현 출신의 카나코 씨였다. 그녀는 우리 한일가정 아이들을 이끌고 서울의 '한일 축제 한마당'에도 출연했다. 서구가족센터(전 서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로부터 지원받아, 일본 요사코이 팀을 초대한 뒤 특별 훈련을 받기도 했다.

 

여름 춤 축제에서는 고치 시 중심부에 생생한 공연과 퍼레이드, 축하 공연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었다.(출처:VIST KOCHI)

 

 '요사코이'는 일본 단체 무용의 한 종류로 시코쿠 고치현에서 열리는 축제 이름에서 비롯했다. 요사코이 축제에서 추는 춤을 통틀어서 이렇게 부른다.

 자유롭게 짠 안무와 직접 만든 음악에 맞추어 나루코라는 도구를 손에 들고 길거리를 활보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식으로 춤을 춘다. 음악은 대체로 지역 민요나 전통 음악을 힙합, 재즈 등 서양 음악과 어레인지해서 만드는 경우가 많단다.

  한일가정 자녀들은 대개 아버지가 한국인이고 어머니가 일본출신이며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면서 정체성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큰아들도 초등학생 시절, 내향적이고 그다지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런 만큼 '요사코이 축제'에 나왔을 땐, 나름대로 열심히 춤을 따라 하려는 모습이었기 때문에, 보기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 아들도 이제 21년 말에 공군에 입대해서, 백령도에 근무하고 있다. 그 당시 중심적으로 춤을 추었던 우리 한일가정 아이들도 이제 대부분 성인이 되었으며, 어리고 귀여웠던 꼬맹이들이 키도 많이 자라서 어느새 어른 같은 청소년이 되었다. 즉 우리 부모세대도 여기에 정착한 지 20년, 30년이 되었고, 그만큼 세월이 지났다는 것이다.

 

랑랑 축제에서 은상을 받았던 요사코이 KOREA JIN은 인천시에 결혼이민자로 거주한 일본 아줌마와 그들의 자녀들로 랑랑 축제가 계기로 결성된 춤그룹이다.일본의 전통춤중에서도 진보적이고 인기가 있는 요사코이 춤을 주로 추고 있다. (출처:오마이뉴스)

 

 이제 '랑랑 축제"에서 춤추며 다녔던 가좌 시장 앞 차도가 축제로 인해 통행금지가 될 일은 없겠다. 그래서인지 그 축제의 추억이 그리워진다. 그날을 위해 디자인하고 재봉한 의상을 입고, 오랜 시간을 들여 예쁘게 분장하고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여줬던 우리 아이들... 앞으로 우리가 사는 서구에서 요사코이 춤을 선보일 기회가 다시 왔으면 한다. 그것은 말로만 전달하기 어려운 문화의 계승이며 정체성 형성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