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서구학 에세이
능내근린공원
(김경은, 유현옥)
어둑어둑 해가 질무렵, 오늘도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태풍이 쓸고 간 며칠 전처럼 빗발이 거셌다면 핑계를 대고 산책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꼼짝없이 나설 수밖에 없는 날이다.
이 시간에 집을 나서는 것은 이 동네에서 살아온 13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진 내 버릇 중 하나다. 혼자서 갈 때도 있고, 남편과 아이 중 누군가와 함께 나설 때도 있다. 또 어떤 날은 이웃 여인과 함께일 때도 있다.
내 발걸음이 옮겨지는 곳은 야트막한 동네 뒷산에 위치한 체육공원이다. 거기에 오르면 ‘능내근린공원’이라는 이름의 푯말이 있지만, 내 생각에는 근린공원이라기보다 체육공원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인조잔디 축구장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축구장 주변의 계단식 관람석에는 그늘막이 설치되어 있어서 해가 따가운 시간에도 경기를 관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 능내근린공원 푯말 ▲ 축구장과 관람석
축구장 주위로 둥글게 펼쳐진 산책길에는 달리거나 경보를 하거나 혹은 느긋하게 걷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다 아기가 아장아장 위태롭게 걷는 모습은 미소를 짓게 한다. 내가 산책 겸 운동을 하는 곳이 그 트랙이다.
칸트처럼 정확한 사람은 아니다. 어떤 날은 날씨가 안 좋아서, 어느 날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다른 날은 집안일이 많다는 핑계로 빼 먹을 때가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것을 내 일과로 분류해 놓았다. 일상 속에 스며든 일이건만 가기 전에는 안 갈 핑계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집을 나서서 축구장을 몇 바퀴 돌고나면 기분좋은 뻐근함이 몰려온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을 것 같은 다리에는 근육이 생긴 기분이 들어 좋고, 숨쉬기가 힘들어진 가슴은 폐활량이 늘어난 것 같아 힘이 솟았다. 이 맛에 운동을 하는 것 같다.
돌다가 힘이 들면 신발을 벗고 자갈밭에 들어가 발바닥 지압을 한다. 트랙 돌기의 마무리는 군데군데 설치되어 있는 운동기구를 또 한 바퀴 도는 것이다. 운동이 끝났음에도 집에 돌아오기 아쉬우면 그늘막에 앉아 축구경기를 보거나, 공원 한 켠에 조성된 산으로 향하는 산책로를 따라 오른다. 산책로에 진입만 해도 갑자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땀이 식는다.
▲ 지압길 ▲ 운동기구와 화장실
한차례 태풍이 지나고 비를 머금은 나뭇잎들이 더 싱그러워졌다. 한동안 무더위와 태풍으로 인해 능내공원을 찾지 못하다가 오랫만에 나선 길이다. 오늘은 운동보다는 비 내린 뒤의 자연을 감상하며 천천히 돌다 오리라.
※ 사진출처 : 직접촬영